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흑역사/목록/정치와 행정 (문단 편집) === [[미국]] === * [[사코와 반제티 사건]] * 드레드 스콧 대 샌드포드(Dred Scott v. Sandford) 판결: 미국 최악의 재판이라면 이런 걸 말하는 것이다의 표본이고, 실제로 미국 연방 법원 역사상 최악의 판결로 꼽힌다. 드레드 스콧은 미육군 군의관인 존 에머슨의 노예였다. 주인인 존 에머슨의 부임지를 따라 노예 제도가 금지된 일리노이 주와 미네소타 주에서도 오랫동안 거주를 하였다. 존 에머슨이 죽자 드레드 스콧은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로 돌아와 미망인 에머슨 부인을 상대로 자신이 12년 동안 자유 주에서 자유를 누려 합법적인 시민권을 지녔다며 자유인임을 선언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다. 노예제를 반대하는 북부 주 판사와 노예제를 옹호하는 남부 주 판사들 사이에 대립이 첨예하였고, 이에 연방 대법원은 메릴랜드의 노예주였던 로저 토니 대법원장이 다수 의견을 작성하여 흑인은 미국 시민권을 가질 수 없으며 소송 능력이 없으므로 연방 법원에 소를 제기할 권리가 없다고 판시하였다. 노예는 재산이며, 따라서 주정부는 개인의 생명과 자유, 재산을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. 이 사건은 미국 사법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판결로 평가된다. 이 판결 후 미망인 에머슨은 재혼을 하였고, 새 남편은 노예반대론자여서 드레드 스콧을 에머슨에게 팔았던 블로 가문에 다시 넘겨주었고 블로 부부는 그를 노예에서 해방시켜주었다. 일단 흑인 노예제의 편을 들어주면서 인권을 무시했다. [[존 마셜]] 4대 대법원장이 굉장히 조심스럽게 사용했던 [[위헌법률심판]]을 최악의 상태로 부활시켜서 위헌 법률 심판 제도를 파탄 내고 사법과 행정의 대립구도를 가져올 뻔했다.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그나마 간신히 유지되던 미국 정세를 [[남북전쟁|전쟁]]으로 급격히 몰고 갔다. * 캐리 벅 사건: [[나치]]보다 빠르게 [[우생학]]을 받아들인 미국에서 있었던 재판,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이를 낳으면 미국 사회 전체에 손해를 끼치므로 아이를 낳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판례를 만든 이 재판에서 법원은 '''캐리 벅에게 강제로 나팔관 제거 수술을 받을 것'''을 명령했고, 이후 버지니아 주를 시작으로 미국의 수 많은 주가 '단종법'을 만들어서, 이를 토대로 미국은 수많은 사람에게 강제로 불임 시술을 했다. 아무도 그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, 먼 훗날에는 미국이 똑똑하고 튼튼한 사람들로 가득한 멋진 나라가 될 거라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. 하지만 [[뉘른베르크 의사 재판|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나치에 부역한 의사들을 재판했고]] 이때 나치 독일 의사들이 내세운 변호 논리가 바로 ''''미국도 했다! 우리보다 먼저 더 많이 했다!!\'''' 였다. 그제서야 자신들의 미친 짓을 깨달은 미국은 그 법을 없앴고, 이 재판을 했던 버지니아 주는 캐리 벅에게 사죄하는 팻말을 아직까지 세워두고 있다. 하지만 정작 이 사죄를 빌어야 할 피해자인 캐리 벅과 그 딸[* 시술 전에 낳았다. 그것도 무려 양부모의 조카에게 성폭행 당해서][* 애초에 정신병원에 들어 간 것부터 이 강간을 무마시키려고 양부모가 누명을 씌운 것이었다.]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